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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휴렛팩커드’의 비즈니스 철학

세계적 컴퓨터 제조 및 판매 업체인 휴렛팩커드(HP)의 공동 창업주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는 스탠퍼드 대학 동창이다.  빌 휴렛은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데이비드 팩커드는 1912년 콜로라도주 프에블로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수학과 과학 강의실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친구가 됐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같이 사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휴렛팩커드라는 회사 이름이 탄생한 배경이 재밌다. 창업을 결정하면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 이긴 사람의 이름을 앞에 넣기로 한 것. 그리고 북가주 팔토알토 지역의 작은 차고를 빌려 제품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HP는 1939년 탄생했다.     이후 두 사람은 열광적인 기업 운영으로 HP가 최고 명성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았다. HP는 새로운 음성발진기를 발명, 초기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1943년에는  신호발전기를 연구, 해군실험소와 함께 레이더 전파탐지 방해 장치 개발을 위해 처음으로 극초단파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된 초단파 제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발전기도 인정을 받았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HP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게 된다.       HP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첫 번째 컴퓨터 제품을 시판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제품과 다양한 측정 기기들도 개발했다. 이어 1970년에는 완전한 자동극초단파망의  분석기를 소개했다. 초단파 시스템의  제조를 위한 설계와 기구의  조화였다. 작은 단위까지 측정 가능한 HP의  레이저 광 간섭계는 반도체  칩 생산을 가능케 한 기구다. 그리고 1980년에는 심장 초음파 제품을 개발, 심장박동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그런가 하면 저렴하고 빠른  레이저  인쇄기도 발견했다. 1991년 HP가 선보인 칼러 인쇄기는 컴퓨터가 칼러 사진도 해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잉크 제트를 이용해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칼러 인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 개인용 컴퓨터(PC), 세계에서 가장 밝은 발광소자(LED) 개발 등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0년 대 중반 HP는 북미. 유렵, 아시아 지역 23개국에 지사를 두고 110개국에 제품을 판매할 정도로 성장세를 달렸다.     HP의 사업 철학은 수익 확대보다 고객과 직원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는 듯하다. 이는 회사의 목표 설정 원칙을 보면 잘 나타난다. HP의 목표 설정 첫 번째 기준은 혁신적이고, 의미가 있고 ,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두 번째는 헌신적인 직원들에 공정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며, 개인의  창조력을  성장, 발전 시킬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세번째는 지역 공동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HP의  성공 비결은 기술적 우수성과 함께 기업의 윤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지속적인 기술개발은 물론 잘못이 발견될 경우 이를 솔직하게 공개한 것이다. 이런 것을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칭송받는 테크 업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PC산업 침체 등으로 HP도 위기를 맞게 된다.  2015년 5월 중국의 데이터 네트워킹 업체인 칭화유니그룹에 51%의 지분을 매각했으며, 그해 11월에는 전략적 기업분할을 선택하게 된다.   기존 컴퓨터 제조 및 판매 사업 HP컴퍼니로, 클라우드 관련 사업은 HP엔터프라이즈 11월 1일 기존 단일 대형 기업인 휴렛 팩커드 컴퍼니는 전략적 기업분할을 선택하여, 컴퓨터 제조 관련 사업은 HP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클라우드 관련 사업은 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됐다. 김기천 / LA카운티 중소기업자문관기고 휴렛팩커드 비즈니스 컴퓨터 제품 세계적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

2022-12-02

[기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선구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는 워싱턴주 시애틀 출생으로 그는 이미 13세 때부터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틱 택 토(Tic-Tac-Toe)’게임을 했을 정도였다.   그가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1975년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형(Micro) 프로그램의 개발이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1986년 컴퓨터 프로그램의 역학적 기억장치를 개발한 네이탄 박사가  부회장으로 합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기억장치를 통해 문서처리, 전자백과사전, 은행의 전산시스템 개발 등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고객들의 반응을 통해 개발 주제를 결정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기회로 활용했다.     지금은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정보망이 됐다. 컴퓨터와 연결된 다른 정보기구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놀라운 통신 혁명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인터넷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최초로 개인용 소형 컴퓨터가 개발되었지만 수백만 대의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될 것을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후 1980년대, 1990년대에도 컴퓨터 활용이 점차 증가했지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전자통신망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빌 게이츠는 1993년 말 신입사원 선발을 위해 코넬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교가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환경에 놀라움을 느꼈다. 전자공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과가 학사 일정, 학생과 교수들의 인명록, 전공 관련 목록, 새로운 강의록 등을 인터넷을 통해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고속 컴퓨터를 통해 모든 학생의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빌 게이츠의 코넬 방문 이후인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개발과 지원에 당시 거액인 연간 1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70년 중반 이후 컴퓨터의 미래를 정확하게 전망한 인물은 빌 게이츠 밖에 없다’며 ‘그가 닦아 놓은 정보의 대로는 우리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인류의 지식 용량은 500년 전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또한 지속적인 정보의 저장이 필요해 책이나 문서로는 불가능하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해 정보의 보관뿐만 아니라 분류 작업도 편하고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일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선구자인 빌 게이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빌 게이츠의 컴퓨터 혁명은 우리의 미래를 밝혀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와 관련 빌 게이츠는 “사람들은 인터넷은 우리와 함께 계속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문제는 환경이나 기술 변화에 충분한 대비가 없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즐겁게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현명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있다”며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컴퓨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젊은 직원도 많다”며 “경험 많은 기존 직원들과 젊은 직원들의 신념이 결합하고 고객들의 요구를  주의 깊게 듣는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물러나 기술자문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2000년에 설립한 개인 자선재단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의류 분야의 연구개발 전염병 예방 등을 위해 활동하는 세계 최대 민간단체다.  김기천 / LA 카운티 중소기업자문관기고 프로그램 컴퓨터 컴퓨터 프로그램 개인용 컴퓨터 컴퓨터 소프트웨어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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